제5도살장

“탑승을 환영합니다, 필그림 씨.” 스피커가 말했다. “질문 있나요?”  
빌리는 입술을 핥고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마침내 물었다. “왜 나죠?” 
“정말 지구인다운 질문이군요, 필그림 씨. 왜 당신이냐고? 말이 나와서 이야기인데 왜 우리여야 할까요? 왜 뭐여야 할까요? 그냥 이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호박琥珀에 들어 있는 벌레를 본 적 있나요?” 
“네.” 빌리는 사실 사무실에 문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안에 무당벌레 세 마리가 들어 있는, 광택이 나는 방울 모양의 호박이었다.  
“자, 여기 우리도 그런 거죠, 필그림 씨, 이 순간이라는 호박에 갇혀 있는 겁니다. 여기에는 어떤 왜도 없습니다." 

- - Kurt Vonnegut [Slaughterhouse-Five, or The Children's Crusade: A Duty-Dance with Death]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다양한 통로로 물질 교환이 일어났으며 권력 관계가 조성되었고 결국에는 어느 한편이나 쌍방의 착취로 관계가 종료되기까지 끊임없이 성실과 근면을 강요받았다." 
- 김금희 [경애의 마음] 中

 

"내가 깨달은 건 사는 게 별로 복잡하지 않다는 거야. 전에는 왜 복잡해 보였는지."
"맞아.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당신이 떠나 있는 동안 내 청춘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어. 이런 생각이 들더라. '이제부터 모든 게 달라지겠구나.' 그런데 결국 똑같더군. 다를 게 없었어. 불현듯 깨달았지. 내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똑같을 거 같다고. 되풀이할 필요 없지." 
         - 에드워드 양 [하나 그리고 둘] 中


5월초 3일 연휴는 양가 부모님께 어버이날 식사 대접 등 외식과 TV, 동네 산책으로 소일.
영화는 [유랑지구]와 [사바하]를 보았는데, 각각 어린이날과 부처님오신날에 어울리는 선택이었달까. 넷플릭스에서 중국 SF 유랑지구 클릭할 때 무상사가 "주성치 신작은 안 나오나?" 하며 말했는데 영화 시작하자 '오맹달'이 딱!😅 일순 반가웠지만 오맹달이랑 주성치랑 싸웠다는 가십이 상기되면서 다시 시무룩...
첫 이틀은 미세먼지가 심했지만 끝날은 날씨도 좋았고 모처럼 맘 편히 쉬었다.

새 거실 커튼

오랜만에 지난 글들을 둘러보니 최근 신상 변화 중 빠진 일들이 좀 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쯤 가게를 정리했고, 이후 들어간 회사는 지난 11월에 현재 다니는 곳으로 옮겼으며, 올해 2월에는 8년만에 이사를 했다.
시간 안에 놓인 운명이니만큼 언제나 과정일 수밖에 없겠지만 요즘은 더욱 과도기임을 실감.

보석의 나라

[宝石の国]. 넷플릭스에 올라오자마자 완주. 대작은 아니어도 유니코, 우테나, 마마마를 연상시키며 페티시나 고어 등의 지적따위 압도해버리는 스타일리시한 매력. 소재가 보석이라 코멘트도 보그체인가. 아무튼 나로서는 수십년만에 [나의 지구를 지켜줘]를 넘어서는 최애 작품을 만났다.

2019 백상예술대상

이십대 여자와 사십대 유부남의 사랑 이야기로 알려진 시놉시스가 제목마저 [나의 아저씨]라서 시청을 포기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이해한다. 여주인공이 자신을 패는 깡패 청년에게 “너 나 좋아하지?"라고 날리는 대사의 문제성도 인정한다. 여론을 반영하여 줄거리를 수정했다는 소문까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완주했던 그 드라마는 작년과 올해 쟁쟁했던 화제작들 사이에서 단연 최고의 각본이었다.

박해영 작가님의 극본부문 수상을 축하드리며, 대상을 탄 [눈이 부시게]와 함께 [올드 미스 다이어리]팀의 건재에도 박수를 보낸다. 올핸 후보에 그친 [붉은 달 푸른 해]의 도현정 작가님이 내년엔 더욱 활약해주시길 기대하지만, 내가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제 영상보다 활자에 치중할 생각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