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꾼 후에

그가 세상을 떠나고 두 달이 지나서야 꿈에 나타났다.  
네가 죽었을 때 믿기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 살아 돌아온 것도 믿어지지 않는다, 야. 
그가 특유의 표정으로 피식 웃었던가.  
내가 애도하며 그린 그림(실제론 그린 적 없음)을 휴대폰으로 보여주려고 하자 그는 디스플레이를 닦아주며 뭐라 설명을 곁들였다. 
지인 몇도 다시 모여 다 같이 식사하러 갔다.  
지지부진한 사업도 이제 잘 굴러가겠거니 희망도 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문득 깨어났다. 
비가 와서 흐린 아침이었다. 



어느 깊은 가을밤 잠에서 깨어난 제자가 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스승이 기이하게 여겨 제자에게 물었다. 
"무서운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제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 [달콤한 인생](한국 영화)

"남길 업적 없으면 이야기라도"

"어떤 장르이건 무시해서는 안되는 규칙이 있다. 그건 내가 뭔가 멋지고 근사한 걸 생각해냈다면 그건 이미 오래 전에 나보다 더 똑똑한 누군가가 먼저 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이전 장르 작품을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사람의 작업물은 이전에 나온 작품들의 열화된 버전으로 떨어지기 마련이다." 


"실적과 실속은 없지만 꾸준하게 글쓰기 공부를 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채찍은 '죽어 업적을 남길 게 없다면 이야기라도 남기자'고 말한 작가의 글에 자극을 받아서다. 우리의 지친 삶을 잘 안아주면 업적은 안 남아도 이야기는 남을 것이다." 

"책은 옛사람의 찌꺼기"

제 나라 환공이 당상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목수 윤 편이 당하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가 망치와 끌을 놓고 환공에게 물었다. 
“감히 여쭙겠습니다만 전하께서 읽고 계시는 책은 무슨 책입니까?" 
“성인의 말씀이다.” 
“그 성인이 살아 계십니까?” 
“벌써 돌아가셨다.” 
“그렇다면 전하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군요." 
“내가 책을 읽고 있는데 감히 목수 따위가 시비를 건단 말이냐. 합당한 설명을 한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윤 편이 말하기를 “신은 제 일 즉 목수의 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만 수레바퀴를 깎을 때 많이 깎으면 헐거워서 튼튼하지 못하고 덜 깎으면 빡빡하여 들어가지 않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정확한 깎음은 손짐작으로 터득하고 마음으로 느낄 뿐 입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 중간에 정확한 치수가 있기는 있을 것입니다만 신이 제 자식에게 그것을 말로 깨우쳐 줄 수가 없고 자식 역시 신으로부터 그것을 전수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일흔 살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손수 수레를 깎고 있습니다. 옛사람도 마찬가지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전하지 못하고 (글로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하께서 읽고 계시는 것은 옛사람들의 찌꺼기일 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 신영복 [강의] 장자의 소요 편 via 날고싶은 자작나무 려원 [씨즐 SIZZLE]

"지식이나 사상은 믿지 않는다"

“지식을 가지면 ‘잘못된 옳은 소리’를 하기가 쉽다.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만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한 가지 문제에는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 평생 그 해답을 찾기도 힘든데, 나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린 ‘정답’이라니…. 이건 군사독재가 만든 악습이다. 박정희 이전엔 ‘정답’이란 말을 안 썼다. 모든 ‘옳다’는 소리에는 반드시 잘못이 있다.” 

-반드시? 

“반드시! 햇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듯이, 옳은 소리에는 반드시 오류가 있는 법이다.” 


원문보기: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