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기스 플랜]은 여성들이 더 반길만한 세련된 작품. 피클 제조자가 수학을 예찬하는 대목이 좋았다.

[휴고]는 영화광 마틴 스콜세지가 영화의 태동에 바치는 찬가. 3D로 보진 못했음. 해피엔딩은 영화속에나 있다거나, 기계에 쓸모없는 부품이 없듯 사람은 각각의 역할이 있다는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잉마르 베리만의 은퇴작 [화니와 알렉산더]를 세시간짜리로 관람. 생각보다 간결했지만 이스마엘이 나오는 절정부가 인상적이었다.

삼국유사

어렸을 적 ‘딱따구리 그레이트 북스'판 삼국유사에서 봤던 김성환 화백의 삽화가 아직도 기억난다. 그림은 없지만 축약본이 아닌 [삼국유사] 전체를 이제야 완독. 전반부 '기이'편이 흥미진진하고 나머지 불교 관련 일화는 진도가 좀처럼 나가진 않았다.
웃음을 자아내던 대목: ’…이로써 옛 은자들의 운치가 이와 같은 것이 많았음을 알겠으나 다만 답습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 피은 제8 중 포산이성
자못 감동적이던 대목: '강론을 다 마치고 나니 그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서 말했다. “나는 이미 하늘에 환생하였다.”’ - 효선 제9 중 진정사 효선쌍미

그리고 개인적으로 신경쓰이던 부분이 있었으니, 바로 '지리다도파'라는 구절의 풀이였다. “…'도파'라고 한 것은 대개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미리 사태를 알고 많이 도망하여 도읍이 장차 파괴된다는 뜻이다.” 기이 제2 중 처용랑과 망해사에 나오는 신라 멸망 징조 중 하나다. 지리를 전공한 친구가 대화명으로 종종 쓰던데, 아무래도 말려야 할 듯.
▶ “소설을 읽는다는 것, 그것은 인간이라는 어떤 우월한 존재가 책이라는 대량생산품을 소비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라는 이야기가 책이라는 작은 틈을 통해 아주 잠깐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세계와 영겁의 시간에 접속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바로 이야기이고, 이야기가 바로 우주입니다. 이야기의 세계는 끝이 없이 무한하니까요.”
- 김영하 [읽다]

▶ 독자: “…장르는 ‘매력적인 코드’라는 말씀도 하셨는데, 제 상상은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 땅에 붙어 있구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소설 쓰기는 상상력이 필요한 작업인데 연습을 하면 되는 걸까요?”
정세랑: “자기가 좋아하는 장르의 닮고 싶은 작가들이 쓴 글을 몸속에 가득 축적하면, 어느 순간부터 쓸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고전들,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들을 100 읽으면 1은 분명 쓸 수 있어요. 꽃잎에서 향수를 추출하듯이 말예요."

법화경

열반하신 운허스님이 동국역경원에서 펴낸 [묘법연화경] 일독. 대승비불설의 끝판왕이란 의견을 접한 것이 법화경을 선택한 계기였으나, ‘불교문학'으로서 기대했던 바완 달리 수희찬탄 가득한 경전이었다. 
까면 깔수록 껍질만 나오는 양파같지만 그 껍질들이 본질이라는 김성철 교수의 비유대로, 상좌부, 대승, 티베트 등 파고들수록 길 잃기 십상인 불학은 아래 글처럼 주관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취해나갈 수밖에 없을 듯.
부처님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 따라 스스로를 섬으로 삼고 보니, 나를 둘러싼 세상은 결국 이야기로 돌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불법 또한 이야기의 우주에 핀 한 송이 연꽃이리니, 어린왕자의 장미처럼 불자들에겐 삶의 의미겠으며, 불자가 아니더라도 법화의 진선미에 위안을 얻을 수 있을 터. 그리고 만물은 저마다의 이야기꽃을 피워나가는 것이리라.


용수 스님의 '중론' / 중관학, 김성철 교수 / 불교 교리에 대한 존중과 의문
http://blog.daum.net/ryuhaeyeong/8745526
고 마이클 크라이튼의 원작을 HBO가 화려한 제작진을 동원해 리메이크한 [웨스트월드] 시즌1을 다 본 다음 이와이 슌지의 2001년작 [릴리 슈슈의 모든 것]까지 관람한 것은, 시공간과 내용이 전혀 다른 두 작품을 잇는 드뷔시의 음악, 그중에서도 [Reverie]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