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발 하라리 [넥서스] 중에서

"인간의 삶은 자기 개선 노력과 자기 수용 사이의 균형 잡기"
"삶이 이야기와 비슷한 것은 우리가 이야기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들은 보통 우리의 생물학적 본능에 뿌리를 둔 몇 가지 유형의 한정된 줄거리를 다루는데, 이런 생물학적 드라마는 관료제의 작동 방식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한다. 이는 생물학적 드라마의 각본이 문서와 기록 보관소가 등장하기 수백만 년 전에 진화에 의해 작성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런 이야기에 매료되는 이유는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 조상들의 생존에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 그리고 [라마야나]의 저자로 알려진 발미키와 같은 인간 이야기꾼들은 생물학적 드라마를 변주하여 정교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놀라운 재주를 보여주었지만, 그중 가장 위대하고 시적인 이야기들조차 기본 줄거리는 진화 핸드북을 그대로 따른다." 

"관료제가 인간의 삶에 종종 초현실적인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주목한 프란츠 카프카와 같은 이야기꾼들은 새로운 비생물학적 플롯을 개척했다."
"관료제를 풍자한 작품들도 있다."
"AI 시스템은 데이터를 찾고 처리하는 방법을 인간 관료들보다 잘 알고, 이야기를 지어내는 능력도 대부분의 인간보다 나아지고 있다." 

"인간이 관료제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관료제가 생물학적 드라마의 각본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고,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관료주의 드라마를 묘사할 의지나 능력이 없다."
"생물학적 드라마에 시선을 고정하는 예술 작품들은 수 세기에 걸쳐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에 일어난 실질적인 변화를 제대로 조명하지 못한다." 

"앞으로 컴퓨터가 점점 더 많은 인간 관료와 신화 제작자를 대체함에 따라 권력의 근본 구조가 다시 한번 바뀔 것이다. 민주주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 새로운 구조를 면밀하게 조사할 수 있는 전담 관료 기관뿐 아니라 새로운 구조를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예술가도 필요하다."
"만일 관료와 예술가가 서로 협력할 수 있고 두 집단이 컴퓨터의 도움을 받는다면, 컴퓨터 네트워크가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에서

"...유머는 자기보존을 위한 투쟁에서 필요한 또 다른 무기였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유머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과 초연함을 가져다준다." 

"스피노자가 그의 '윤리학'에서 무엇이라고 했던가?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그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니체가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시련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명백하게 밝혀지면서 우리는 수용소 안에서 자행되는 폭력을 무시하거나 거짓 상상을 하거나 억지로 만들어낸 낙관적인 생각을 즐기는 것으로 그것이 주는 고통을 감소시키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됐다. 시련으로부터 등을 돌리기를 원하지 않았다. 시련 속에 무엇인가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릴케가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련이 그 얼마인고'라는 시를 쓴 것도 아마 시련속에 이런 기회가 숨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릴케는 마치 작업을 완수한다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이 시련을 완수한다라고 했다. 우리에게는 완수해야할 시련이 너무나 많았다. 따라서 우리는 될 수 있는 대로 나약해지지 않고, 남몰래 눈물 흘리는 일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고통과 대면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눈물 흘리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왜냐하면 눈물은 그 사람이 엄청난 용기, 즉 시련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것을 깨닫는다." 

"사람은 어느 정도 긴장 상태에 있을 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그 긴장이란 이미 성취해 놓은 것과 앞으로 성취해야할 것 사이의 긴장, 현재의 나와 앞으로 돼야 할 나 사이에 놓여 있는 간극 사이의 긴장이다. 이런 긴장은 인간에게 본래부터 있는 것이고, 정신적으로 잘 존재하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내면에 잠재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도전장을 던지는 일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해야만 그동안 숨어 있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를 일깨울 수 있다.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마음의 안정 혹은 생물학에서 말하는 항상성, 즉 긴장이 없는 상태라고 흔히 말한다. 나는 정신건강에서 이것처럼 위험천만한 오해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가치있는 목표, 자유의지로 선택한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서던 긴장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성취해야 할 잠재적 의미를 밖으로 불러내는 것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이다. 말하자면 한쪽 극에는 실현돼야 할 의미가, 다른 극에는 의미를 실현시킬 인간이 있는 자기장 안의 실존적 역동성이다.
이것이 정상적인 상황에서만 유효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신경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에게 더 효력이 있다. 낡은 아치를 튼튼하게 할 때, 건축가는 오히려 아치에 얹히는 하중을 늘린다. 그래야만 아치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이 서로 잘 밀착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환자의 정신건강을 증진시키려는 심리요법가는 삶의 의미를 갖도록 지도하는 과정에서 환자 마음에 어느 정도 긴장을 유도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된다." 

"인생을 두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인간존재가 본질적으로 일회적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있는 로고테라피는 염세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인 것. 염세주의자는 매일 같이 벽에 걸린 달력을 찢어내면서 날이 갈수록 그것이 얇아지는 것에 두려움과 슬픔으로 바라보는 사람과 비슷하다. 반면 삶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람은 떼어낸 달력 뒷장에 중요한 일과를 적어놓고, 그것을 순서대로 깔끔하게 차곡차곡 쌓아놓는 사람과 같다. 그는 거기에 적혀 있는 풍부한 내용들, 그동안 충실하게 살아온 삶의 기록들을 자부심을 갖고 즐겁게 반추해볼 수 있다.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까? 젊은이들을 보면서 부러워하거나 잃어버린 자신의 청춘에 대해 향수를 가질 이유가 있을까? 무엇 때문에 그가 젊은이를 부러워하겠는가? 그 젊은이에게 놓여 있는 잠재 가능성 때문에? 아니면 그가 지닌 미래 때문에? 천만의 말씀.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가능성 대신에 나는 내 과거속에 어떤 실체를 갖고 있어. 내가 했던 일, 내가 했던 사랑뿐만 아니라 내가 용감하게 견뎌 냈던 시련이라는 실체까지도 말이야. 이 고통들은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지. 비록 남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네'라고 대답하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말이다.
또한 이 말은 인간이 삶의 부정적 요소를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것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창조적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전제가 되기도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중요한 것은 어떤 주어진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