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道

"형편(인연)에 따라 다른 바른 길. 
사실에 기반한 자연스러움."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송길영)

"개인의 내적 성숙(중량의식)을 바탕으로 한 자립이야말로 경량문명의 토대"
— 메모광 [경량문명은 중량의식을 낳는다] 
“AI를 활용해 소설을 써서 모국어뿐만 아니라 여러 개의 언어로 번역해 직접 출판하고 세계 시민을 대상으로 판매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능력이 있는 사람이면 출판사에 취업할 일이 아니다. 직접 작가가 될 필요가 있다. 
누구나 저자가 되고자 한다. 저자가 되는 것은 창업하는 것과 같다. 이른바 ‘대창업’의 시대가 되었다.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누가 살아남는가가 중요해졌다. 나는 마지막까지 도태되지 않을 수 있을까!” 

즉문즉설

 “아무도 미리 준비하고 어른이 되지 않습니다. (중략) 저도 지금 일흔셋인데, 살다 보니 이 나이가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칠십 노인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해 봤습니다. 살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조금 지나면 팔십 노인이라는 소리를 듣겠지요. 시간이 더 지나면 침대에 누워 ‘스님, 눈떠 보세요. 눈떠 보세요.’ 하는 얘기를 들을 것이고, 그러다가 죽음을 맞이하겠지요. 누구나 죽음을 미리 준비하고 맞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거예요. (웃음) 
 그냥 그렇게 사는 거예요. 어쩌다 보니 이민을 왔고, 어쩌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생겼고, 또 어쩌다 보니 오십이 되는 겁니다.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사는 거예요. 원래 인생이 그렇습니다.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면 인생살이가 피곤해집니다.” 

"사람은 위로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각성이 있어야 하고, 또 약간의 재미와 유익함도 곁들여야 합니다."

"물질적 기준은 밥을 먹고 똥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요리하고 먹고 소화해서 결국 내놓는 결과물이 뭔가요? 똥입니다. 삶에서도 결과물에 집착하는 것은 똥에 집착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짜 보람은 그 과정을 사는 동안 이미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삶의 찌꺼기인 ‘지위, 재산, 명예’ 같은 결과물인 똥에 집착해 그것으로 성공과 실패를 판단합니다.
 어떤 예술가가 20년간 만든 작품이 홍수로 모두 사라졌을 때 큰 충격을 받고 저에게 상담하러 왔습니다. 저는 ‘왜 똥에 그렇게 집착합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작품도 결국 하나의 결과물일 뿐입니다. 과정 속에서 이미 삶의 의미는 실현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삶의 결과물인 똥의 색깔과 크기로 성공과 실패를 따지며 괴로워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크고 작은 일들을 수없이 겪게 됩니다. 그 순간에는 온통 인생을 뒤흔드는 큰일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 5년, 10년이 지나고 돌아보면 대부분은 그다지 큰일이 아니었던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늘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야 깨닫는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5년, 10년이 지나서 알 필요가 있겠습니까. 지금 당장 일어난 일도 ‘나중에 돌아보면 이것 역시 별일 아닐 것이다.’라고 미리 생각할 수 있다면, 우리는 현재를 훨씬 가볍게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쓰면 지나간 일을 붙들고 괴로워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삶의 무게는 사건 자체보다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후회한다는 것은 잘못을 자각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이 이런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자세입니다. 자신이 잘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오히려 '내가 이럴 수 있으니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 된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진정한 참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법륜스님

“인간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는 걸까요?”

“정해진 운명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이 500년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죠. 어느 날 누군가 '저기로 가면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을 거야.'라고 예언했다고 해봅시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죽지 않기 위해 옆길로 비켜 간다면, 그 예언은 빗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예언대로 정말 죽게 된다면, 그 예언이 맞았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결국 예언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사실 운명을 따지는 이유는 욕심 때문입니다. 공짜로 무언가를 얻으려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것과 같아요.
우리 속담에 ‘일은 사람이 하고, 뜻은 하늘이 이룬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신이 결과를 정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저 자신이 할 일을 하면 됩니다. 만약 질문자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다람쥐도, 노루도, 풀벌레도 모두 운명이 정해져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사람만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할까요?”  
“우리 속담에 ‘사주팔자는 자기 하기 나름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정해져 있지 않다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만 이것이 맞느냐가 아니라 믿음이 다를 뿐입니다. 만약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믿을 때 질문자처럼 따지면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정해진 대로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붓다는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이치로 보면 맞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원래 과학자가 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승려가 되었어요.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말하기를 ‘너는 원래 승려가 될 운명이니까 아무리 과학자가 되려고 해도 결국 승려가 될 운명이었다’ 이렇게 말을 할 수는 있습니다. 이것은 결과론적 해석입니다. 그러나 붓다는 이런 모순을 지적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선택하는 겁니다. 열심히 할 건지 안 할 건지도 자기가 선택합니다. 즉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정해진 삶은 본래 없습니다. 그것이 좋으면 그렇게 내가 만들어서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좋지 않으면 그렇게 안 살아도 됩니다. 그것은 본인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혼자 결정할 수 만은 없습니다. 부모님도 관여하고, 스승님도 관여하고, 친구도 관여합니다. 결혼하면 아내도 내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렇듯 세상 온갖 것들이 다 관여합니다. 우리는 그런 관계와 상황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내가 내 삶을 산다기보다, 그때그때 주변에서 오는 자극과 분위기, 관계 속에서 생기는 감각과 느낌에 반응하며 따라갈 때가 더 많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아, 이게 나의 운명인가 보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말씀처럼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처한 환경의 영향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치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을 때, 그 습관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방금 곡예사가 외줄을 타는 비유로 설명했는데,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외줄을 타는 일은 쉽지 않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결국 각자의 삶입니다. 가령 스승님이 저를 강제로 스님으로 만들었다고 이야기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따져 보면 그 상황과 환경 속에서 제가 그렇게 살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via Journey@atmostbeautiful

 “가장 간과했던 것은 책으로 인간 조건을 이해하려 애쓰면서도 바로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가장 생생한 인간 드라마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극적인 아이러니였다. 책 읽는 삶-특히 작가의 삶-은 쉽게 일종의 자기-소비로 변질되어 세상을 피 한 방울 없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전락시킨다. 
군복무를 마친 후 마지막으로 부대 회전문을 나설 때 나는 자문했다: 책이 없었다면 군대에서의 내 삶은 어땠을까? 하지만 (부대 밖) 현실의 삶이 다시 시작되려던 바로 그때 또다른 질문이 답을 요구했다: 그렇다면 삶이란 무엇일까, 책이 곁에 있음에도?” 

“색스는 자신의 서사적 에너지를 환자에게 빌려주는 듯한 방식으로 그들을 '생기 있게 만든다'고 표현했다. 병원의 잊힌 병동에서, 일종의 서사적 공백 속에서 살아온 환자들은 어쩌면 그 교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약간의 부정확성도 감수해야 한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혹은 '글쓰는 사람이 원래 그런 거지'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색스는 공감 능력을 모든 훌륭한 의사가 갖춰야 할 자질로 정립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그 이상을 구현했다. 그러나 그의 사례 연구와 그 장르가 드러낸 것-공감이 지나치게 창의적이거나 침습적이거나 소유욕적인 것으로 쉽게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은 결코 명확하지 않았다. 치료사와 작가들은 피사체를 자신의 삶을 통해 필연적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이는 창조적이면서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방식이다. 
이렇게 썼다. '내면의 삶을 해부하는 행위, 그것이 어떻게 구상되든, 얼마나 미묘하고 섬세하든, 사실은 그것이 탐구하는 바로 그 본질을 파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수년간 색스는 다른 이들에게서 깨어남의 가능성을 시험해왔다. 마치 리허설을 하듯, 혹은 외주 작업을 맡기듯, 자신이 (오랜 연인이자 상담의였던) 셴골드에게서 이루고 싶었던 치료를 대신해본 셈이었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마치 안팎이 뒤바뀐 사례 연구처럼, 그는 자신이 환자를 위해 상상했던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 『깨어남』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우리 모두는 잃어버린 건강과 온전함을 되찾아 줄 또 다른 종류의 치료법을 꿈꾼다.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찾아 일생을 보낸다. 그리고 어느 날, 아마도, 우리는 갑자기 그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감정과 선물

"기술은 감정의 도구화를 부추긴다. 감정마저 어떤 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행동으로 전환될 때만 진실된 것처럼 느낀다. 스마트와치에 쏟아지는 피트니스 지표들-쉴 때 심박수, 걸음 수, 수면 점수-을 보고, 이 숫자들을 실제 몸과 마음 상태보다 더 실감나게 느낀다. 소셜 미디어에서도 자신이 올리는 표현들이 더 증강된 현실이 되고, 챗GPT 같은 AI 도구를 통해 대학의 경험도 창의적 몰입에서 특정 목표 달성 위한 프롬프트 식별로 바뀐다."
- Steven Barrie-Anthony via 전병근 

“제가 스님에게 선물을 드리는 게 아니에요. 스님께서 제 선물을 받아주시는 게 저에게 선물입니다.”
- 어느 베트남 청년

[기획의 감각]

“내가 만들어야 할 아이돌의 경쟁자는 이미 활동 중인 다른 아이돌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지금 젊은 세대가 겪는 삶의 고단함과 팍팍한 현실이 가장 큰 경쟁자라고 본다. 이들은 학업, 취업, 관계 등 여러 방면에서 끝없는 경쟁에 내몰려 있고, 그로 인한 피로감이 상당하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바로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의 고단하고 팍팍한 삶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게 해줄 수 있는 감정적 도피처를 제공하는 것이 기획의 핵심이라는 거다. 이 관점에서 보면, 내가 기획한 걸그룹 트리플에스는 다른 아이돌 그룹을 레퍼런스로 삼지 않았다. 대신 동시대 젊은 세대의 욕망과 고민을 레퍼런스로 삼았다.” 
"현실 가능한 것들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없던 것들을 상상하자.
기반에 근거한 상상이 아니라
근간을 흔드는 상상을 해보자는 것."
- 정병기(Jaden Jeong) 모드하우스 대표이사 겸 프로듀서

자유 의지

"열려 있는 미래를 계속 만들어가는 일만이 필연이다." 
-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미래를 전망한다는 것]

“나는 모범생답게 ‘칭찬 중독자’의 삶을 길게 살아왔다. 기준값이 내 안에 있지 않고 타인에게 있었는데 그럴 때의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둘 다 경험했던 10년이었다. 기준값이 나의 내면에 있는 삶을 살고 싶다. 그게 곧 ‘자유’라는 단어와 동일한 것 같다.” 

headphone & earphone


늙어가며 스트레스 받다보니 면역력은 떨어지고 각종 염증이 하나둘씩 나타나는 와중에 외이도염까지 발발. 여태껏 즐겨 쓰던 커널형 인이어는 이제 사용하기 어렵게 되었다. 생애 최초로 오버이어 헤드폰도 구입해봤는데, 귓구멍에 닿지 않더라도 귀 전체를 덮어 습도에 취약함을 알고선 좌절. 귀찌처럼 귓바퀴에 거는 클립형 이어커프가 거의 유일하다시피한 대안임을 발견하곤 시험삼아 저렴한 제품을 구매해봤으나, 주로 야외나 지하철에서 음악을 듣는 나같은 패턴에게 외부 소음에 답없는 오픈형은 한계가 분명해서 휴대를 포기할 지경이었다. 

이 계통에서 음질로는 Bose가 으뜸이라는 정보에 도박을 감행. 마침 보상판매 행사로 구매하고 들어본 결과, 지난번 보급형보다 확연히 월등한 수준을 체감. 귓구멍도 압박하지 않고 외부 소리도 들려서 오랜 시간 착용해도 불편함이 없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익숙했던 것들과 결별할 일들이 늘어가지만 이렇게 새로운 문물과 만나는 소소한 재미도 있으니, 한탄만 하고 살 일도 아니겠다. 이것들로 요즘 쏠쏠하게 듣고 있는 말러 교향곡 전집만 해도 예전엔 LP나 CD로 구매하려면 돈도 돈이지만 구할 수 있는 연주가 제한적이었는데 스트리밍 시대가 되면서 50년대 모노 명반부터 최신 고음질 녹음까지 두루 접할 수 있으니, 나같은 막귀에겐 지금이야말로 호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