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a Journey@atmostbeautiful

 “가장 간과했던 것은 책으로 인간 조건을 이해하려 애쓰면서도 바로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가장 생생한 인간 드라마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극적인 아이러니였다. 책 읽는 삶-특히 작가의 삶-은 쉽게 일종의 자기-소비로 변질되어 세상을 피 한 방울 없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전락시킨다. 
군복무를 마친 후 마지막으로 부대 회전문을 나설 때 나는 자문했다: 책이 없었다면 군대에서의 내 삶은 어땠을까? 하지만 (부대 밖) 현실의 삶이 다시 시작되려던 바로 그때 또다른 질문이 답을 요구했다: 그렇다면 삶이란 무엇일까, 책이 곁에 있음에도?” 

“색스는 자신의 서사적 에너지를 환자에게 빌려주는 듯한 방식으로 그들을 '생기 있게 만든다'고 표현했다. 병원의 잊힌 병동에서, 일종의 서사적 공백 속에서 살아온 환자들은 어쩌면 그 교환 과정에서 발생하는 약간의 부정확성도 감수해야 한다고 느꼈을지 모른다. 혹은 '글쓰는 사람이 원래 그런 거지'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색스는 공감 능력을 모든 훌륭한 의사가 갖춰야 할 자질로 정립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그 이상을 구현했다. 그러나 그의 사례 연구와 그 장르가 드러낸 것-공감이 지나치게 창의적이거나 침습적이거나 소유욕적인 것으로 쉽게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은 결코 명확하지 않았다. 치료사와 작가들은 피사체를 자신의 삶을 통해 필연적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이는 창조적이면서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방식이다. 
이렇게 썼다. '내면의 삶을 해부하는 행위, 그것이 어떻게 구상되든, 얼마나 미묘하고 섬세하든, 사실은 그것이 탐구하는 바로 그 본질을 파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수년간 색스는 다른 이들에게서 깨어남의 가능성을 시험해왔다. 마치 리허설을 하듯, 혹은 외주 작업을 맡기듯, 자신이 (오랜 연인이자 상담의였던) 셴골드에게서 이루고 싶었던 치료를 대신해본 셈이었다. 그러나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마치 안팎이 뒤바뀐 사례 연구처럼, 그는 자신이 환자를 위해 상상했던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 『깨어남』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우리 모두는 잃어버린 건강과 온전함을 되찾아 줄 또 다른 종류의 치료법을 꿈꾼다.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찾아 일생을 보낸다. 그리고 어느 날, 아마도, 우리는 갑자기 그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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