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운명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이 500년 이상 살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죠. 어느 날 누군가 '저기로 가면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을 거야.'라고 예언했다고 해봅시다. 그 말을 들은 사람이 죽지 않기 위해 옆길로 비켜 간다면, 그 예언은 빗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예언대로 정말 죽게 된다면, 그 예언이 맞았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결국 예언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따지는 건 큰 의미가 없습니다. 사실 운명을 따지는 이유는 욕심 때문입니다. 공짜로 무언가를 얻으려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것과 같아요.
우리 속담에 ‘일은 사람이 하고, 뜻은 하늘이 이룬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신이 결과를 정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저 자신이 할 일을 하면 됩니다. 만약 질문자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면 다람쥐도, 노루도, 풀벌레도 모두 운명이 정해져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사람만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할까요?”
“우리 속담에 ‘사주팔자는 자기 하기 나름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고, 정해져 있지 않다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만 이것이 맞느냐가 아니라 믿음이 다를 뿐입니다. 만약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믿을 때 질문자처럼 따지면 노력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정해진 대로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붓다는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것은 이치로 보면 맞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원래 과학자가 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승려가 되었어요.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말하기를 ‘너는 원래 승려가 될 운명이니까 아무리 과학자가 되려고 해도 결국 승려가 될 운명이었다’ 이렇게 말을 할 수는 있습니다. 이것은 결과론적 해석입니다. 그러나 붓다는 이런 모순을 지적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선택하는 겁니다. 열심히 할 건지 안 할 건지도 자기가 선택합니다. 즉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고 정해진 삶은 본래 없습니다. 그것이 좋으면 그렇게 내가 만들어서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좋지 않으면 그렇게 안 살아도 됩니다. 그것은 본인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혼자 결정할 수 만은 없습니다. 부모님도 관여하고, 스승님도 관여하고, 친구도 관여합니다. 결혼하면 아내도 내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렇듯 세상 온갖 것들이 다 관여합니다. 우리는 그런 관계와 상황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내가 내 삶을 산다기보다, 그때그때 주변에서 오는 자극과 분위기, 관계 속에서 생기는 감각과 느낌에 반응하며 따라갈 때가 더 많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아, 이게 나의 운명인가 보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말씀처럼 운명이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처한 환경의 영향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치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을 때, 그 습관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방금 곡예사가 외줄을 타는 비유로 설명했는데,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외줄을 타는 일은 쉽지 않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결국 각자의 삶입니다. 가령 스승님이 저를 강제로 스님으로 만들었다고 이야기로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따져 보면 그 상황과 환경 속에서 제가 그렇게 살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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