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힌 하수도 뚫은 노임 4만원을 들고영진설비 다녀오라는 아내의 심부름으로두 번이나 길을 나섰다자전거를 타고 삼거리를 지나는데 굵은 비가 내려럭키슈퍼 앞에 섰다가 후두둑 비를 피하다가그대로 앉아 병맥주를 마셨다멀리 쑥국 쑥국 쑥국새처럼 비는 그치지 않고나는 벌컥벌컥 술을 마셨다다시 한번 자전거를 타고 영진설비에 가다가화원 앞을 지나다가 문 밖 동그마니 홀로 섰는자스민 한 그루를 샀다내 마음에 심은 향기 나는 나무 한 그루마침내 영진설비 아저씨 찾아오고거친 몇 마디가 아내 앞에 쏟아지고아내는 돌아서 나를 바라보았다그냥 나는 웃었고 아내의 손을 잡고 섰는아이의 고운 눈썹을 보았다어느 한쪽,아직 뚫지 못한 그 무엇이 있기에오늘도 숲 속 깊은 곳에서 쑥꾹새는 울고 비는 내리고홀로 향기 잃은 나무 한 그루 문 밖에 섰나아내는 설거지를 하고 아이는 숙제를 하고내겐 아직 멀고 먼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세시에 흰 눈이 내리네
흰 눈이 내린다마당 가득 흰 눈이 내린다누군 히말라야에 가서 초라한 너를 발견하였다는데네시 약속을 위해 집을 나서는 길차마 흰 눈 위에 발을 딛지 못하고마당가에 섰다가 거대한 나를 보았다함박꽃이 되어 내리는 올해의 첫눈너를 찾든 나를 잃든 오늘은 비긴 날로 하자그러니 우린 하나다지금이라도 우연히 골목에서 만나면함박꽃 한 술 떠 서로 먹여주며아프게 살아온 지난 여름은 잊도록 하자그래 그러라고세시가 지나는데 흰 눈이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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