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에서도 유용한 실용지식을 찾는다

“왜 장르일까? 어제 내 나름의 논리로 설명했다. 나는 2000년대 초반에 한 강연에서 모든 사회화 과정은 생략되고 남녀관계만 남는데 남녀관계도 섹스만 남는다고 말했었다. 그때 강연을 들었던 한 분이 아마도 그것도 사이버로 하는 게 더 쾌감이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며 그것마저 생략될 것이라고 이야기해서 공감하며 웃었었다. 어린 여직원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생략하고 다음의 이야기를 했다. 과거에 인간은 가족, 학교, 사회, 국가, 세계로 범위를 넓히며 사회화 과정을 통해 ‘어른’들에게 하나하나 배우며 차차 성장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사회화 과정이 생략되고 있다. 어쩌면 인간은 태어나면서 ‘빅히스토리’부터 떠올려야 한다고 말이다. 빅히스토리는 빅퀘스천Big Question이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우주 속에서 자신의 위치부터 이야기해야만 한다. 

어린아이가 동네 구멍가게에서 무심코 사탕을 주워 먹으면 동네 싸움이 벌어졌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아이는 많은 것을 배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길모퉁이 구멍가게에서 맥주나 담배를 살 일도 없다. 쿠팡에 주문을 하면 초스피드로 도착한다. 스마트폰이 바로 시장이고 사교클럽이고 도서관이다. 스마트폰으로 우주에 연결된다. 어쨌든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빅뱅을 떠올려만 하는 세상이다. 

박완서나 권정생은 6.25라는 극악한 전쟁을 체험한 것만 잘 정리해도 대작가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아이들은 그런 곳에 관심을 기울일 시간이 별로 없다. 더더군다나 독재시대나 87항쟁을 떠올리는 후일담 문학은 더더욱 그렇다. 그들은 SF나 판타지에 빠져있다. 빅퀘스천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기 위함이 아닐까? 물론 로맨스도 중요하다. 모든 사회화과정이 생략되어도 남녀관계는 남기 때문이다. 지금 중고생이 열렬히 읽는 소설은 서브컬처 일색이다. 게임을 즐기는 그들은 스릴과 서스펜스를 즐기면서 소설 속에서도 유용한 실용지식을 찾는다. 하여튼 최근에 청소년들이 즐기는 소설은 장르문학이 대부분이다. 요다는 그런 흐름을 읽고 설립된 회사다. 하여튼 지금의 청소년들이 성장하면 어떤 소설을 읽을 것인가? 일본의 60대나 70대도 어릴 때 만화세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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